신혜원변호사의 H법정스토리
싱그러운 계절, 5월이 왔습니다. 5월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가정의 달이라 하지요. 멀리 있어서, 일하느라 바빠서, 하다가도, 5월에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 뵙게 됩니다.
김씨 할아버지 부부 사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80이 훌쩍 넘으셨습니다. 두 분 모두 평생 남에게 폐 한 번 안 끼치고, 자식들 잘 키워내고,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그렇게 착실히 살아왔습니다. 노년에 작은 집 한 채 있고, 은행에 아껴 모은 저축이 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하지만,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항상 할아버지 곁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그렇게 두 분이 일상을 보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 뒷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깻잎, 상추, 방울 도마도,고추 등을 심어서, 매일 들여다보며 물을 주고, 그런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햇빛을 쐬며 바라보곤 합니다. 때가 되어서 푸르게 올라오는 이파리들, 빨간 도마도, 할머니가 따서 할아버지 먹거리 해드리고,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재미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이웃들은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한 것을 알기에, 가끔씩 찾아와서 몸으로 힘쓸 일은 없는지, 이거 저거 들여다보고 뚝딱거리며 도와주곤 합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한 번씩 왔다 가면, 이 작은 텃밭의 평온이 깨지곤 합니다. 가물에 콩 나듯 한 번씩 올 때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섭섭한 속내를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식들이 큰 소리를 내곤 합니다. ‘에이, 다른 노인네들처럼, 양로병원에 들어가셔서, 편안히 사시면 될 걸, 그 나이네 이 집이 다 무슨 소용이래요? 그리고 자식들 욕 먹게 시리, 왜 자꾸 이웃한테 도와 달라 그러세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이 없습니다.
이러기를 수 차례, 어느 날, 자식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와, 차에 태우고 어딜 갑니다. 가 보니, 어느 미국 변호사 사무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과 은행에 저축이 있어, 정부에서 주는 메디칼 혜택을 못 받는 거라고 합니다. 자기네끼리 뭐라고 영어로 떠들어 대더니, 영어로 된 서류를 주르르 펼쳐 놓습니다.
일단, 미국에서 메디칼 없으면 앞으로 의료비 때문에 큰 일이니, 정부에서 주는 메디칼 혜택 신청하는 서류에, 할아버지 할머니 둘 다 사인하라 합니다. 그리고, 은행에 있는 돈은 일단은 남은 금액 모두 자식들 이름 앞으로 수표를 쓰고, 두 분이 돈 필요할 때마다 자식들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을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영어로 말하고 영문을 읽고 쓴 적이 별로 없었고,기껏해야, 맥도날드에서 영어로 커피 시키고 땡큐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처음 가 본 곳에서, 그것도 미국 변호사 앞에서, 영어로 떠들며 영문 서류들을 펼쳐대니, 할아버지 할머니 진땀이 납니다.
이게 뭐냐? 라고 물을 겨를도 없이, 아들과 딸이 양 옆에 앉아서, ‘여기 사인하세요’라고 서류 위에 손가락으로 짚어줍니다. 자식들이 짚어준 곳에 떨리는 손으로 느릿느릿 사인하면,자식들이 바로 다음 서류로 분주히 넘기며, 또 손가락으로 짚어줍니다. 사인하라고요.
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인한 서류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자식들에게 양도하고 소유권을 이전하는 문서, 할아버지 할머니 재산을 자식들이 다 알아서 관리, 처분할 수 있게 하는 문서 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본인들 명의로 가진 재산이 없어야, 메디칼 혜택을 받는 양로 병원에 갈 수 있다는 명분 하에, 할아버지 할머니 생전에 아직 상속도 되기 전에,할아버지 할머니 전 재산이 자식들에게 탈 탈 털린 것이지요.
자, 오늘의 이야기는 법을 가지고 이리 저리 따지고 설명하기 이전에, 미국 한인 가정에서,각종 정부 혜택 받아보려다 부모 자식 간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 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에이, 설마, 변호사님, 진짜 그런 일이 있어요? 라고 묻지 마시고, 이번 5월, 부모님 텃밭에 물도 주고, 가지도 좀 쳐주고, 흙도 좀 뒤집어 주고, 깻잎, 상추에 고기도 좀 굽고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그런 5월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213)385-3773